방명록

1. 환영합니다!

2. Wojciech는 가장 오래된 슬라브어 이름 중 하나로서 특히 폴란드에서 흔히 쓰이는 이름 중 하나입니다. 'woj'는 전쟁을 의미하고 'ciech'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3. 주로 중부 유럽, 발칸 반도 등 구 동유럽 공산권의 언론 기사들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최근에는 종교, 특히 이슬람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4. 정치 성향은 보수 우파에 가깝습니다. 

5. 제 포스팅에 관한 문의, 반론을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다만 인신 공격이나 욕설은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대체 역사 배경 설정: 유럽과 체첸 문제 대체 역사 : 2010년대

주의: 이건 어디까지나 대체역사관 속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진짜가 아니라는 거지요. 진지하게 믿으면 절대 안됩니다. 중간에 실제 역사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섞여있으나 사건의 매끄러운 전개를 위해서 넣었을 뿐입니다. 전체적으로는 완전한 가짜이니 이 점 명심하여주시기 바랍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국제 사회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성공적으로 시장 경제와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안착시켰다. 일련의 개혁 조치를 통해 민영화된 국영 기업은 다시 경쟁력을 찾을 수 있었으며 소련 말기 자유화를 틈타 힘을 키워가던 마피아 세력은 몇년 만에 다시 힘을 잃었다. 권위주의적이고 경직적이던 공권력도 서서히 유연해지고 있었다. 혼란에 빠진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아예 내전 상태에 접어든 구 유고 연방 국가들과 달리 러시아는 기타 동유럽 국가들과 함께 1990년대 체제 전환국의 모범적인 사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프카스 문제는 러시아의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혔다. 특히 체첸 문제는 러시아의 최대 약점이었다. 냉전 종식을 이유로 대규모 군축을 진행해나가던 러시아는 1차 체첸전에서 엄청난 손실을 입었고 1999년 2차 체첸전에서 엄청난 인명을 희생시킨 끝에 체첸을 겨우 평정했다. 2차 체첸전 이후에도 카프카스 지역의 저강도 분쟁은 체첸 민족주의가 이슬람 원리주의로 변질되면서 계속되었고 그럴수록 연방 정부는 체첸에 더욱더 가혹한 탄압을 가했다. 이는 민주 국가라는 러시아의 또 다른 한계를 드러내보였다. 

2000년 그로즈니 함락 이후 러시아는 체첸과 다게스탄, 잉구세티야의 경제 재건에 온 힘을 기울였으나 오랜 전쟁과 정정 불안으로 인해 지역 경제 재건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2016년 현재 러시아의 1인당 명목 GDP는 약 22,000달러인 반면 체첸 공화국은 2,000달러도 되지 않으며 다게스탄, 잉구세티야도 비슷한 처지이다. 이는 유럽 뿐만 아니라 구 소련 지역 전체에서 가장 낮은 수치이다. 구 소련 시절 16개 공화국에서 가장 낙후된 타지키스탄의 2016년 현재 1인당 명목 GDP가 2,300 달러임을 고려하면 이러한 체첸의 경제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실업률도 약 60퍼센트에 달했으며 다게스탄, 잉구세티야와 함께 군정도 계속 실시되면서 지역 주민들의 박탈감, 반러 감정도 매우 크다. 이런 바람에 러시아를 떠나 주변 국가들(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등)로 이주하는 사례도 늘었다. 

아프간 전쟁이 장기전으로 접어든 2002년을 기점으로 체첸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장기간에 걸친 부분 계엄령 하에서 체첸 공화국 내의 불안은 가라앉고 있었지만 사태의 여파가 이제는 러시아 국내 뿐만 아니라 중서유럽과 중앙아시아 전역으로 전이되기 시작한 것이다. 러시아가 유럽 공동체(EC), NATO에 가입하면서 서유럽과 밀접해지고 기타 유럽 국가들과의 이동이 자유로워졌다는 사실은 역으로 말해 러시아 출신 이슬람 테러리스트, 원리주의자들이 유럽으로 침투하기 한결 용이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더욱이 러시아의 서방 편입을 대가로 서방에서 체첸에 대한 인권 유린을 묵인하면서 카프카스 무슬림들은 이제 반러와 함께 반서구 성향도 생겼다. 이러한 가운데 일부 안보 전문가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서유럽 국가들과 러시아는 무비자 협정을 맺었고 이런 무슬림들이 유럽 쪽 CIS 국가들과 중서유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중서유럽 사회 곳곳에 암약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유럽 대륙에서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리스트 세력에 알카에다 뿐만 아니라 체첸 출신 테러리스트들까지 가세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이 두 세력이 협력하기 시작하면서 문제는 갈수록 커져만 갔다. 이러한 추세는 2007년까지 절정이었다가 2000년대 후반 들어서 안정 상태로 접어들었는데 2010년대 이후부터 다시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 2000년 ~ 2015년 미국, 유럽 대륙과 중앙아시아에서 발생한 테러리즘 관련 주요 사건
2000년 2월: 그로즈니 함락
2000년 3월: 러시아 대선 실시, 블라디미르 푸틴이 러시아 대통령에 당선
2000년 5월: 옐친이 퇴임하고 푸틴이 러시아 대통령에 취임, 같은 달 체첸에 대한 임시 군정 실시 천명
2000년 12월: 러시아 트베리역에 정차 중이던 고속 열차에서 폭탄이 터져 승객 40여명 사망, 100여명 부상
2001년 2월: 우크라이나 키예프 국제 공항의 아에로플로트 항공 데스크에 폭탄이 날아와 20여명 사망
2001년 10월: 9.11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 아프가니스탄 침공
2001년 10월: 타지키스탄 두샨베에서 대통령을 겨냥한 암살 시도 발생. 타지키스탄이 미국에 공군 기지를 제공한 보복 테러로 추정
2001년 12월: 카자흐스탄 악타우 근교의 송유관에서 테러로 보이는 폭발이 발생해 일시적으로 원유 수급에 차질이 생김
2002년 4월: 우즈베키스탄 당국이 안보 불안을 이유로 아프가니스탄과의 국경을 전면 차단했다가 2달만에 해제
2002년 10월: 러시아 모스크바 극장에서 인질극 발생, 100여명 사망
2003년 1월: 그로즈니에서 체첸 계엄 사령관을 겨냥한 총격 테러가 발생해 군 관계자 수명 사망
2003년 7월: 폴란드 그디니아 항구에 국제 해군 박람회 참가를 위해 정박 중이던 러시아 해군 소속 구축함에 자살 폭탄 공격 발생, 장병 10여명 사망
2003년 11월: 이란의 팔레비 2세 국왕 즉위식 참석을 위해 방문한 서방 주요 지도자들에 대한 암살 계획 적발 
2003년 12월: 러시아 스타브로폴의 통근 열차에 폭탄 공격이 발생하여 10여명 사망 
2004년 2월: 모스크바 지하철에서 폭탄 테러 발생, 40여명 사망
2004년 2월: 러시아, 소련 붕괴 이후 폐지된 주요 기차역과 지하철역에서의 검문검색시스템 부활
2004년 3월: 스페인 마드리드의 주요 열차역에서 연쇄 테러 발생, 190여명 사망
2004년 3월: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나토 가입
2004년 9월: 러시아 북오세티야 공화국 베슬란 학교에서 인질 사건 발생, 300여명 사망
2005년 1월: 러시아, 유럽 공동체 가입
2005년 7월: 영국 런던에서 연쇄 테러 발생, 50여명 사망 700여명 부상
2005년 8월: 라트비아 리가에서 러시아 기업 우랄바곤자드 소속 파견 러시아인 임원 아파트에 폭탄공격이 발생하여 10여명 사망 
2006년 5월: 독일 베를린 국제공항에서 근무하던 체첸 출신 직원이 미군 수송기에 총격을 가해 그 자리에서 사살 
2007년 2월: 카자흐스탄 알마티를 출발, 이란 반다르 압바스로 향하던 카자흐스탄 국적기가 아프가니스탄 상공에서 폭발, 승객 100여명 전원 사망
2007년 6월: 프랑스 툴루즈에서 원리주의자가 경찰서 습격
2007년 7월: 파리, 베를린, 암스테르담, 런던, 바르샤바, 프라하, 키예프, 부쿠레슈티, 베오그라드, 소피아 등 유럽 주요 국가 17개 도시의 미국과 러시아 대사관에 동시 폭탄 공격을 감행하려던 계획 적발
2007년 8월: 밀라노 주재 러시아 영사관에 총격 테러가 발생하였으나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음  
2008년 5월: 푸틴 퇴임,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에 취임
2008년 9월: 터키, 나토 전격 탈퇴
2009년 4월: 러시아, 체첸에서의 군정 종료, 체첸 자치 당국에 민정 이양 및 자치 공화국 지위 회복 
2010년 3월: 모스크바 지하철에서 폭탄 테러 발생, 40여명 사망
2010년 5월: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차량 폭탄 테러 시도 발생
2011년 1월: 도모데도보 국제공항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하여 30여명 사망
2013년 12월: 러시아 볼고그라드와 다게스탄 마하치칼라에서 폭탄 테러 발생
2014년 3월: 터키, 북키프로스 합병
2014년 5월: 키프로스 사태가 내전으로 격화
2015년 1월: 프랑스 파리의 한 언론사와 슈퍼마켓에 테러 공격 발생
2015년 2월: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대규모 무슬림 폭동이 발생해 수도 기능이 일시적으로 마비, 국가비상사태 선포
2015년 2월: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기차역에 폭탄 공격 발생 

드보르자크 '루살카' -폴로네이즈- 2번째 이야기 음악

예전에 한번 소개한 적이 있었지만 좀 더 부연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그만큼 제가 참 즐겨듣는(보는) 오페라이기도 합니다.

'루살카'는 슬라브 신화에서의 물의 정령의 이름이지만 드보르자크의 대표적인 오페라 작품 중 하나로 더 잘 알려져있습니다. 1901년 3월 31일 프라하 국립국장에서 초연되었지요. 대부분의 오페라가 보통 독일어, 이태리어로 되어있지만 이 오페라는 유럽에서 마이너한 체코어로 되어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보르자크라는 거장의 명성 덕에 상당히 국제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플롯은 인어공주와 거의 같다고 보면 됩니다.

'달에 부치는 노래(Měsíčku na nebi hlubokém)'가 이 오페라의 대표곡입니다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이 노래보다는(싫어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단지 선호의 차이일 뿐) 지금 소개할 폴로네이즈입니다. 

사실 이 폴로네이즈를 접한 건 좀 뜬금없겠지만 성인 잡지 '허슬러'의 창간자 래리 플린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래리 플린트'(1996)에서였습니다. 영화 초기 우디 해럴슨이 분한 래리 플린트와 코트니 러브가 분한 알시아 플린트가 목욕탕 속에서 서로 사랑을 고백한 후 결혼 장면을 담은 정지 사진이 연속으로 나오면서 이 음악이 나왔지요. 그 뒤 영화 중반에 래리 플린트가 총에 맞아 하반신 마비가 된 이후 LA의 거리(여장한 남자가 나오는 장면이 참으로 충격적이었지요.)와 래리 플린트의 저택이 나올 때도 이 영화가 나옵니다. 여하튼 음악이 굉장히 인상깊어서 머리에 멜로디가 계속 맴돌더군요. 처음에는 왜 이 영화에 뜬금없이 클래식 음악이 나오나 싶었는데 O감독이 체코 출신의 밀로스 포먼(아마데우스도 이 양반 작품이지요.)이고 또 해당 음악이 드보르자크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군요. 여하튼 그렇게 해서 하나의 좋은 음악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루살카는 그녀가 사랑하는 왕자와 결혼하기 위해 마녀 예지바바가 준 약을 마시고 인간으로 변신합니다. 대신 말을 할 능력을 잃어버리지요. 숲속에서 왕자는 그녀를 발견하고 궁전으로 그녀를 데려옵니다. 그러나 루살카가 말을 하지 못하자 왕자는 곧 흥미를 잃고 자신을 계속 유혹하는 외국 공주에게 마음이 쏠리게 됩니다. 무도회가 열리고 루살카가 보는 가운데 왕자는 그 외국 공주에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이 장면의 서두에 나오는 곡이 바로 이 '폴로네이즈'입니다. 

뭐랄까 화려하면서도 뭔가 익숙한 멜로디, 흥겨우면서도 뭔가 모를 애수가 느껴지는 게 이 곡의 매력이랄까요. 그동안 화려한 문화적 성취를 이루었지만 주변 강국들에게 치이고 지배받았던 서슬라브족과 체코의 고달픈 역사(그리고 그 후에도 나치 독일, 소련에 이르기까지 수십년간 그 고난은 이어지지요.)가 무언가 녹아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트럼프가 하루도 쉬지 않고 북한 동향을 묻는다는군요. 국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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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오 CIA 국장의 발언입니다. 이로 미뤄볼 때 현재 트럼프가 생각하는 최대 현안은 미러 관계, 나토 회원국들의 무임승차, 공정 무역이 아니라 역시 북한인 것 같습니다. 문제의 한미 FTA 재협상 여부도 그 자체가 중요 현안이 아니라 북한 문제와 연계하여 생각할 가능성이 높겠지요. 상황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는 건 분명해보입니다. 이럴 때일 수록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텐데요.

 

헬무트 콜 전 총리 별세 서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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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Helmut Josef Michael Kohl (1930.4.3 ~ 2017. 6.16)

재작년에 헬무트 슈미트 옹이 96세를 일기로 고인이 되었는데 이제 헬무트 콜 옹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군요. 작년에 난민 사태에 관한 EU의 태도를 비판하면서 유럽의 미래를 걱정하던 고인에 관한 포스팅을 작성했었죠. 그 때 이 양반까지 별세했을 때 브뤼셀에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원로 정치인이 과연 얼마나 남아있을까 하고 푸념했었는데 결국 생각보다 빨리 고인이 되어버렸군요. 하기야 몇년 전 통일 기념식 때 휠체어를 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아있는건 아니라는게 짐작이 갔습니다만....

여튼 독일 통일의 주역이 되어 역사에 길이 남게 된 인물도 이렇게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먼 나라 얘기 같지만 아시다시피 독일 통일 과정과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우리 한국에도 매우 큰 교훈을 안겨주고 있고 그렇기에 결코 무시해서는 안되는 사안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헬무트 콜 옹의 타계는 새삼 완전히 남의 소식으로 다가오는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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